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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y hyungz


#150 일상

20170702
1
아침으로 만둣국을 먹었다. 나서려니 그새 정들어 헤어지기 아쉬웠다. 서로 머뭇머뭇 어색하게 아쉬운 말들만 했다.
먼저 빨래방을 가기로 했다. 빨래가 하나도 마르지 않아 당장 입을 옷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설록에 잠시 들려 녹차밭을 구경했다. 고개를 쳐올려야 겨우 하늘을 볼 수 있는 서울에 사는 내게, 탁트인 경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하게 터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빨래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가족이 와서 빨래를 하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양이었다. 아이들이 4-5명쯤 됬던 것 같은데 첫째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보였다. 빨래를 옮기느라 기진맥진한 아빠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를 보니 이전에 여행작가 주인아저씨가 생각났다.

2
걷다가 버스를 타고, 내려서 다시 걷다가 버스를 탔다. 버스가 어느 언덕을 넘자, 앞에는 바다로 뒤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왔다. 마을의 오른쪽에는 큰 해안절벽이 있었다. 숙소에 아무도 없어 전화를 했더니 주인아저씨가 나오셨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긴 팔다리를 가진 아저씨였다. 주황색 꽃무늬 바지와 헐거운 티셔츠, 뿔테안경, 긴 머리를 머리띠로 넘긴 모습이 자유분방해 보였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가지구요. 아유 피곤해. 들어오세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시고 수건을 가져다 주시더니 너무 피곤하다며 침대에 누웠다.
나도 찾아오는데 꽤 피곤했기 때문에 누워서 낮잠을 자려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채 30분도 안되서 벌떡 일어나, 심심하다며 낚시를 가자 하셨다. 세상 지루한 취미라고 생각했던 낚시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고기를 꽤 많이 잡았던 것 같다. 허탕만 치던 주인아저씨는 옆 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먹자 우리도 질 수 없다며 철수하자고 하셨다. 
고기를 굽고 다른 게스트들과 술을 주고 받았다. 나를 제외하고 게스트가 2명있었다. 한 명은 건축회사를 다니는 40대 후반 아저씨였다. 잠깐 직장을 쉬고 제주도에서 3개월째 살고 있다고 하셨다. 이미 동네의 사정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윷놀이 하던데 김씨 아저씨도 가셨을라나. 어이 삼촌 와서 고기 좀 먹고 가요. 하는 말들이 이미 이 낭만적인 동네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다른 한 명은 사업을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형이었다. 외국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붙임성이 좋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나자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 둘 씩 와서 젓가락을 들고는 맛있게 좀 구워보라며 칭얼거렸다. 서핑이 좋아 제주도에 주말마다 오고 있다는 어떤 여자분도 길을 지나가다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가 곧 군대에 간다고 하자 다들 '나때는 말이야'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시작해 거의 1시간 반 동안 각자의 군생활 에피소드를 풀었다. 다들 내 등을 토닥이고 술을 따라주겠다며 나섰다. 

3
전에 축구 선수를 했다던 뚱뚱한 삼촌이 어설픈 표준말로 말씀하셨다. 
여기 정말 좋지. 삼촌은 말이야 서울로 기술을 배우러 간 적이 있었어. 세 달 정도 교육을 받기로 되어있었어. 근데 말이야,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고. 숨이 막히더라고. 결국에 나는 한 달만에 다시 이 동네로 돌아왔어.
삼촌, 저도 바다 수평선만 바라봐도 너무 좋더라구요.

4
내 젊은 날의 한동안을 주눅들게 했던 파문들에 대한 원망이 퍼뜩 스쳐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전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이곳처럼, 그렇게 조용히 잔잔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에 핏줄 세우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싶었다. 

5
취한 탓인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모두 혼자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맑은 소주잔을 부딪히며 각자의 인생에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나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 무작정 제주도에 내려와 3개월을 살고 있다는 아저씨. 매일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며 업무를 보는 청년 사장.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서핑하러 온다는 누나. 윷놀이 판에는 자기가 빠질 수 없다던 동네 삼촌. 행복이란 무엇일까. 당장 뛰쳐나가 당신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술이 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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